
남극해가 왜 한국의 장마에 영향을 줄까?
우리는 흔히 여름철 장마와 폭우의 원인을 한반도 주변의 북태평양 고기압이나 태풍, 티베트 고기압 같은 지역적 요소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지구 반대편, 남극해의 변화가 동아시아의 여름 기후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서울의 장마가 남극 해역의 수온과 염도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고? 얼핏 보기엔 터무니없는 연결처럼 보이지만, 지구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하는 시스템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남극해 온난화가 일으키는 대기 순환의 변화
2024년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연구팀은 남극해의 표층 해수 온난화가 대기 상층의 웨이브 패턴(파동) 변화를 유도하고, 이는 열대 인도양과 아시아 몬순에 간접적인 파급 효과를 미친다고 밝혔습니다.
- 남극해 온도가 올라가면, 고위도 지역의 열분포가 변화
- 이는 중위도에서 저위도까지 파장을 가진 대기 순환 변형을 유도
- 결국 동아시아 여름 몬순에 ‘수증기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나
- → 한반도에 과도한 강수, 장마 정체, 국지성 폭우로 이어짐
즉, 남극해의 수온 변화가 ‘강수 벨트’를 위로 끌어올리고, 이로 인해 서울·도쿄·상하이 같은 도시들이 예전보다 훨씬 습한 여름을 겪는 현상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해수의 염도 증가, 또 다른 변수
남극해는 온도만 오른 것이 아닙니다. 2015년 이후 남극해의 해수 염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물이 짜졌다’는 차원을 넘는 심각한 기후학적 신호입니다.
염도 상승 → 층화(stratification) 심화 → 해빙 감소 가속
- 바닷물의 염도가 높아지면, 해수 상하층 간 밀도 차가 커져 심층수와 표층수가 잘 섞이지 않음
- 그 결과, 심층수에 축적된 열이 표층으로 쉽게 전달되지 못함
- → 표층은 빠르게 따뜻해지고, 해빙은 더욱 빠르게 줄어드는 악순환 발생
이러한 해빙 감소는 다시 대기의 제트기류 경로를 바꾸고, 북반구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한마디로, 남극의 ‘얼음’이 북반구의 ‘비’를 조절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실제 데이터가 보여주는 연결성
강사라 박사팀의 기후 시뮬레이션은 1990년대보다 최근 30년간 한반도 여름 강수량이 남극해 해수면 온도와 더 강하게 연관되었음을 입증했습니다.
예를 들어,
- 남극해 표층 온도가 0.5°C 상승하면,
- 동아시아 몬순 벨트의 강수량이 평균보다 최대 20% 증가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구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이제 우리는 기후를 단지 ‘지역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울의 폭우는 남극의 해빙, 아마존의 증산 작용, 인도양의 해수 온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텔레커넥션(teleconnection) 구조는 인공지능 기반의 기후 예측 모델 개발에서도 핵심 변수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결론: 극지를 바라봐야 도시의 미래를 안다
이제 장마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서울의 구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남극의 바다, 빙하, 심층수의 흐름까지 이해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기후 연결성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더 멀리 있는 ‘원인’을 요구합니다.
남극해 온난화는 단순한 극지 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여름을 바꾸는 실질적 요인입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 안에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